작가 '허지웅'이라 하면 항상 서늘한 칼끝을 연상했다. 들끓는 감정을 차단하려는 듯한 단열재와 같은 은빛의 서늘함. 그래서인지 그에게서 풍겨지는 온도가 차가워도 밉지는 않았고 오히려 더 눈이 갔다. 그만큼 온정의 눈길로 바라보는 작가이기에, 이번 책도 주저 없이 구매했다.
책장을 넘길수록 책장 모서리가 접히는 횟수가 늘어나고 그렇게 두툼해져 버린 책장은 어쩐지 그의 따스함과 닮았다. 이웃과 사회를 향한 따듯한 시선을 전보다 단정해진 문장들에 담아 메세지를 명료하게 했다. 그의 시선 속에 담긴 한국 사회의 한 사람으로서 정이 참 많이 가는 책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 사회를 보는 관점이 낳은 행동이 극명하게 달랐다는 점에서-그는 글을 쓰고 나는 떠났다-마음을 짓누르는 듯한 묵직함을 책 읽는 동안 계속 느껴야 했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있다고 인스타그램에 올렸을 때, 한 지인이 다이렉트 메시지로 '전과 달리 너무 몽글몽글해졌다며 실망(?) 했다'라고 평했지만 나는 다른 누구도 아닌 허지웅의 몽글몽글함이어서 좋다. 그리고 실망했을지언정 그의 몽글 거림을 느껴버렸다는 점에서 지인의 평도 어쩐지 사랑스러웠달까. ㅎㅎ
번외.
요즘 전자책과 종이책에 대한 고민이 꽤 컸는데, 이 책을 읽는 동안 역시 난 아직은 종이책이 좋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책끝 접는 버릇도 여전하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들고 다닌 탓에 닳아버린 책 표지의 모서리를 볼 때마다 어쩐지 뿌듯하다. 작가의 일방향 소통에 독자로서 할 수 있는 일종의 답장으로 느껴져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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