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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5

큰어머니 큰어머니, 잘 계시지요? 이제 안부를 여쭤볼 수는 없지만, 항상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 어려서는 이별이란 것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언제든 뵐 수 있다고,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어요. 만남에는 끝이 있다는 걸, 그 뒤엔 추억만 곱씹어야 한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아버렸어요. 수능날 어머니 대신 챙겨주신 전복죽을 저는 잊지 못해요. 명절 때 어린 제가 컵이 필요하다고 하면, 살림에 너무 익숙해진 큰어머니의 손이 뚝딱 끝내버리는 설거지도 잊지 못해요. 삶에 치여서 항상 어깨를 넘지 못했던 그 단발머리도 잊지 못해요. 엄마가 아플 때 엄마를 대신해서 저와 동생을 돌봐주신 날들도 잊지 못해요. 뵙지 못하고 지낸지 10년이 넘은 것 같아요. 이제 볼 수 없겠지만은, 어느 날 길에서라도 마주친다면 기억 속 모습과는 .. 2021. 6. 9.
B에게 독일에 도착한 날 연락하자마자 한달음에 달려와준, 따듯함이 풀풀 나는 사람. 나의 독스타그램 지분의 90%(ㅋㅋ). 사람에 대해서 회의적이다가도 널 보면 그 회의감마저 널 만나기 위한 당연한 수순으로 느껴진다. 외국에서 산다는 게 참 쉬운 일이 아닌데, 그걸 먼저 해내고 또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책도 많이 읽고 계획도 만드는 걸 보면 진짜 멋져. 사진도 잘하고 영상도 잘하는 너. 예전에 나한테 작업물 처음 보여줬을 때부터 독일에서 얼른 자리 잡고 많은 사람들이 네 실력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평소에 생각도 깊어서 그 이야기를 들으면 나의 내적 영역도 확장되는 느낌을 받고, 그게 참 좋아. 내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또 잘 다독여주기도 하고 :) 만날 때마다 맛집도 알려주고 매번 잘 챙겨줘서 고마.. 2021. 4. 26.
y에게 나의 첫 대학 친구. 우리가 벌써 알고 지낸 지 14년이다. 내 대학 생활에서 널 지우면 남는 게 없을 것 같다. 나는 널 생각하면 항상 미안하고 고맙고 그래. 너처럼 정말 멋있는 사람이 내 친구라는 게 참 감사하다. 그리고 내가 너랑 동문이어서 자랑스러워. 14년 내내 너의 디자인 셀렉은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 중에서 으뜸이다. 볼 때마다 '와 역시 눈이 다르구나' 했다. 이건 진짜 거짓하나 없는 내 생각. 같이 미술관도, 디자이너 강연도 가고, 타이포 스터디도 같이 하고, 데미안 허스트로 같이 과제도 하고. 옆에서 정말 많이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마음도 따듯하지. 사실 내가 너 만날 때마다 이야기하지만 너 아니었음 나 절대 졸업 못했다. 학교 가기 싫어서 자퇴니 뭐니 할 때도 네가 나 엄청.. 2021. 4. 20.
H에게 한국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시간이 필요하다고 해서 연락은 못하지만 네 생각은 틈틈이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네가 나에게 알려준 것이 정말 많아서 내 방 곳곳에 네 흔적이 차고 넘치니까. 물건들이 내 곁에 익숙해지는 만큼 그 기원도 또렷해지니까 어쩔 수가 없다. 너와 너의 취향은 참 귀하다. 너 덕분에 일본 소설도 읽어 봤고 당시에 뉴욕에서 핫하다는 곳들도 가볼 수 있었고 좋은 노래, 영화, 드라마를 접할 수 있었어. 그냥 단순하게 소개를 해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왜 좋은지 네 관점이 담긴 설명도 참 좋았어. 덕분에 읽은 지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인간 실격'을 떠올릴 때면 여전히 눈물짓게 되었거든. 게다가 손도 야무져서 또박또박 자음 하나 흘리지 않고 쓰는 손글씨와 아담한 요리는 참 .. 2021. 4. 15.
E에게 "내가 좋아하는 얼굴이야" 뉴욕의 펍에서 처음 널 봤을 때 했던 말이었는데, 기억나니? 넌 네가 어떨지 몰라도 그냥 내 눈에 너는 참 예쁜 사람이다. 차츰 친해지면서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시원시원하면서도 형제가 많은 집의 장녀라 나보다 동생인데도 어른스럽고, 뉴욕 떠나던 날 마지막까지 날 챙겨주는 모습에 정이 많이 들었지. 그때의 뉴욕 여행은 사실 예정에 없던 거였는데, 너도 그렇고 다른 친구들도 만나게 되었으니 덕분에 잊을 수 없는 여행이 되었어. 다른 사람에겐 어떻게 대하는지는 몰라도 내 앞에서는 짜증이든 기쁨이든 여과없이 표현해주어서, 나는 그 솔직함이 더 편해서 참 좋다. 동생이라 그런가 난 네가 짜증내면 그냥 웃겨ㅎㅎ 또 마냥 가벼운 것은 아니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불쑥 튀어나오는 깊은 면.. 2021.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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