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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기술 사이/그리고서(書)

단순한 진심, 조해진

by dobbie und berlin 2021.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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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국을 떠나던 날에 속 깊은 대현님이 건네 준 소설, <단순한 진심>. 책의 첫인상인 표지가 어째 영 마음에 들지 않아서 들고 오긴 했지만 언제 읽을지는 몰랐던 책이다. 그러다 보니 베를린의 집으로 돌아와 짐을 정리한 뒤에도 한동안은 책장 끄트머리에 보이는 둥 마는 둥 있었더랬다. 그러던 어느 날, 책의 표지가 마음에 참 거슬려서 책장을 펼쳤다. 왜 이 소설의 표지는 이러한가, 그 궁금증을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리고 한 장, 두 장,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종종 헷갈리는 이름들 사이에서 헤매다 다시 가닥을 잡으며 책 속을 전진했다. 

 

소설 속 주인공 문주는 프랑스 가정으로 입양되어 '나나'라는 이름으로 오랜 기간을 살아왔음에도 '문주'라는 이름 두 글자를 품에서 놓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 이름을 마음속에만 묻어두려고 했던 문주는 서영의 이메일을 읽고 한국행을 결심한다. 문주를 한국행으로 이끈 메일의 첫 문장-'이름은 집이니까요'-은 나에게도 이 소설의 끝을 보게 한 발단이 되었다. 소설 속의 문장들은 주인공을 닮아서 역동적인 서사를 뱉어내지도 않았고 작위적으로 감정을 이끌어내지도 않았다. 

 

문주는 자신의 이름의 기원을 찾고자 애썼고 그 과정에서 만난 이름들은 각자의 집 속에 저마다의 이야기를 숨겨두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문주는 그 집들의 문들을 살며시, 혹은 힘껏 열어버렸고 그를 통해 '문주'라는 오래전에 허물어진 집을 가다듬어 나갔다. 또 문주가 그 이름들에서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결국엔 이해할 수밖에 없는 인간다움을 발견했다. 그 순간에서 나는 문주와 가까워졌다. 우리 모두가 이름이 있고, 그 안에 각자가 넣어둔 인간다움이 있을 테니까. 그리고 나는 현재 '린다'라는 이름의 집을 지으며 존재감을 쌓는 중이므로.

 

 

책 속에 남은 내 시간의 흔적

 

그 때문인지 마지막 장을 덮는데 기분이 마치 독일행 비행기에 막 올라탈 때와 같았다. 한국에서의 내 모습이 연기처럼 흩어져버리던 그 순간, 동시에 달팽이처럼 '린다'라는 이름이라는 집을 이고 살아가는 그 처음의 순간. 그래서 문주와의 작별에서 아쉬움보다는 안녕이라는 안부를 언젠가 들을 수 있을 거란 작은 기대를 남길 수 있었다.

 

 


 

 

한 달 전쯤 다 읽었는데, 초안도 2주 전쯤 다 써두었는데, 참 감상평은 다른 글보다 어렵게 느껴지는 바람에 이제야 끝을 맺는다. 다른 책들도 얼른 쓰고 싶은 마음이지만 참 쉽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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