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어 어렵다 어렵다 하지만 수능 때 생각해보면 그만큼 열심히 하고 있지도 않다. 정신 차리면 충분히 할 수 있는 거다. 나약한 소리나 해대서야 어디 뭘 해낼 수 있겠나.
나는 부산의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녔고 더 큰 도시인 서울에서 꼭 공부하고 싶었다. 그래서 고등학교 1학년 중간고사 성적을 보고, 고등학교 1학년 기말고사 때까지 내신이 잘 나오지 않으면 서울로 가는 다른 길을 찾겠노라 다짐했고, 그 길이 미술이었다. 그런 이유에서 시작한 미술이었기 때문에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 만큼 그림을 잘 그리지 못했다. 그래도 수리를 빼고 나머지는 모의고사 점수가 잘 나와서 상위권 대학을 지원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수능을 기가 막히게 말아먹었다. 그렇게 평준-하향 지원을 했는데 또 한 번의 천운으로 가군만 붙는 기적을 얻었다.
수능이 끝나고 미대 실기 날이 될 때까지 매일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앉지도 못하고(디자인은 서서 그림) 그림을 그렸다. 나는 수능에서 내 그림 실력을 만회할만한 성적을 얻지 못한 상황에서 그림 실력을 커버해야 했기 때문에 부담이 컸다. 스케치, 초벌, 재벌, 마무리, 완성 각각 단계마다 단계를 맞추지 못해서 매번 이름이 불렸고, 단계마다 이름이 불리면 3-5대씩 맞았다(가끔가다 전임이 불쌍해서 한 단계 정도는 건너뛰어줬다). 그래도 나는 대학에 가고 싶었으니까 제일 먼저 가서 맞았다. 남자 새끼도 매 맞는 게 무서워서 제일 뒤로 가서 서는 그 줄을 매번 제일 먼저 가서 맞았다. 하루에 한 3번 이상은 불렸으니까 9대씩 이상은 맞은 것 같다. 전임은 매가 좀 약한 걸로 바뀌니까 그림을 더 못 그리는 거 같다면서 새로 매를 뽑았지(쉬바). 그때는 내가 나에게 가장 매정해야 했다. 또 하루는 다들 그림을 못 그리자 전임이 화가 나서 밥을 못 먹게 했는데 하필 그날이 생리일이었다. 나는 그림을 잘 못 그리는 사람이었으므로 화장실은 꿈도 못 꿨다. 그리고 그날 딱 10분씩 2번 밥 먹을 시간을 줬는데 그 학원 1층에 있던 편의점에서 사 먹었던 핫브레이크가 1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때 그 겨울을 기점으로 손이 너무 많이 고생해서 매 겨울마다 손이 쫙쫙 튼다. 그렇게 그 층에서 유일하게 나만 한양대를 갔다.
독일어 어렵다 어렵다 하지만 그때 그 마음이라면 솔직히 별거 아니지 않을까? 영역으로 따지면 고작 1 영역인데. 오늘 손주은 선생님 영상을 보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태 독일어가 어렵다는 통상적인 이야기에 갇혀서 스스로를 나태 지옥에 빠뜨려버린 것 같다. 내가 나에게 최선을 다했을까. 솔직히 내 양심은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그래서 동시에 오늘을 기점으로 나는 다시 마음을 다 잡았다. 오늘 아침부터 일어나서 운동할 때 쓰는 밴드를 다리에 묶어두고 계속 책상 앞에 붙어 있다. 당시에 날 움직이게 했던 것은 서울로 가겠다는 간절함과 채찍질이었지, 우울함이나 잠시 걷어줄 나약한 위로 따위가 아니었다.
손쌤 말대로 모든 걸 갈아치우고 공부.
나는 내가 그림을 잘 못 그리기 때문에 미대 입시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게다가 어차피 대입 때 다들 각자의 방법으로 고생하는데
나만 유난 떠는 거 같고 그래서 남들 앞에서 이야기해본 적이 거의 없다.
근데 오늘은 손주은 쌤 영상을 보고 내 과거를 돌아보니,
독일어도 그때만큼만 하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나를 위해 되짚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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