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일본어, 스페인어, 독일어 공부를 하면서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언어 공부는 별 게 없고 반복 학습의 횟수(노출 횟수)와 맥락의 이해도에 달려있다.
자연스러운 노출 그런 헛소리 다 집어치우고 본론만 간단하게 말하자면,
1. 문법은 중요하다.
나는 문법이 안 중요하다며 쉐도잉만 줄곧 해대는 사람이 답답하다. 아 물론, 일본어처럼 한국어와 어순이 비슷하고-몇몇 단어는 거의 같을 정도-문화의 교차점이 있다면 문법은 조금 천천히 배워도 된다. 하지만 문화가 이질적이고 모국어와 문장 구조가 다르다면 문법을 '개괄적'으로는 알아야 한다. 쉐도잉을 하면 분명 도움 되는 부분이 있긴 하다만, 거기에 문법을 알면 부스터 효과가 확실하다. 쉐도잉한 문장을 가지고 활용하는 범위를 넓힐 수 있으므로 유리하다. 따라서 문법을 가볍게 훑듯이 공부를 해야 한다. 그리고 문법을 알아야만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능동태와 수동태의 차이 속에는 상대방이 어떤 것에 중점을 두느냐가 숨어있다. 행위를 받는 대상이 어쩌고 이런 건 나중에 알아도 된다. 다만 문장 구조가 어떤지, 그리고 왜 쓰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왜'를 이해하여야만 상대방의 말에서 맥락을 잡을 수 있다. 더 나아가 맥락이 이해가 될 때, 언어 속에 담긴 그 마음이 파악되면서 언어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 영어는 익숙하지만 독일어는 생소한 학습자를 위하여 한마디 덧붙이자면,
영어에 익숙할수록 꼭 독일어 문법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독일어 문법은 영어에 비해 복잡하기 때문에 제대로 알지 못하면 단어는 비슷해서 '대충' 감은 오는데 정확하게 무슨 말인지 모르는 안타까운 경우가 생긴다. 문법만 제대로 잡아도 영어 학습 시 길러두었던 어휘의 도움을 받아 독해력이 급상승하게 된다. 그런데 영어 할 줄 안다고 까불고 제대로 문법을 안 하면 쓴맛을 보게 될 것이다(그게 바로 나).
2. 단어도 중요하다.
한국 학습자들은 어린 시절 단순 암기 교육법에 지친 탓인지 암기의 효과를 경시하는 풍조가 있다. 하지만 단어는 언어 공부의 꽃이다. 아기에게 가장 처음에 가르치는 단어가 무엇인가? 보통은 '엄마'다. 아이에게 엄마를 가리키며 그 존재를 '엄마'라고 일컬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아기는 '엄마'라는 단어가 가리키는 존재가 누구인지 알 때, 엄마를 '부른다'. 그런데 내가 머릿속에 특정한 사물을 떠올려도 그것이 무엇인지 명명하지 못한다면 밖으로 내뱉을 수가 없고, 반대로 상대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다. 특히 문법이 어렵게만 느껴진다면 단어 암기에 좀 더 힘을 실으면 언어 공부의 속도를 높일 수 있다. 읽기에서는 의도를 읽기는 어려울 수 있어도 무슨 내용인지 파악이 가능하고 듣기에서는 조각조각 들리더라도 그 조각들을 통해 유추가 가능하다. 언어는 답답함이 해소되어야 흥미를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단어를 많이 알면서 성취를 느끼고 그를 통해 언어 공부를 지속적으로 하려는 의지를 다질 수 있다.
+ 언어를 사용하는 국가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가장 먼저는 유명인사의 이름과 유명 브랜드, 프렌차이즈 이름 정도는 알아두면 훨씬 이해하기 쉽다. 독해에서는 어차피 대문자 표기라 문제가 없는데 들을 때는 (특히 초급 단계에서) 헷갈리기 쉽다.
3. 입으로 뱉어야 한다.
일부 한국 학습자들은 시작 단계부터 원어민 튜터를 선호한다. 하지만 여러 언어를 공부해본 입장에서 초창기엔 오히려 1번에서 언급한 것처럼 문법, 특히 '왜 말하는지'를 잘 이해하여야 하기 때문에 학습 언어를 나보다 먼저 배운 사람을 선생으로 삼는 것이 좋다. 그리고 이 때는 혼자 집에서 하루에 10 문장 정도만이라도 계속 입에 붙여야 한다. 이를테면 She/He는 언제나 is나 doesn't와 함께 쓰이므로-are이나 don't을 절대 쓰지 않기에-주어와 함께 동사가 반사적으로 함께 나올 수 있는 연습을 해야 한다. She.. umm.. 이러면서 생각해서 말할 거리가 아니다. 그래서 이런 수준에서는 원어민에게 비싼 돈을 줘가면서 과외하고 언어교환 친구 만나는데 열을 올려봐야 실력이 안 는다. 오히려 쉐도잉이 많은 도움이 된다. 하지만 한국 학습자들은 언어를 학교에서 교과목으로 만나다 보니 문법만 파고 말로 뱉는 연습을 잘하지 않는다. 게다가 여태 영어를 재미없게 공부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노출되는 게 재미있을 거라고 착각하지만, 애석하게도 언어 공부 그 자체는 원래 좀 재미가 없다. 쉐도잉을 하면서도 내가 도대체 뭘하는 건가 의구심이 들겠지만 그 시간을 버텨야 한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암기했던 단어와 소리가 연결성이 떨어져 말하기는 물론이고 듣기도 잘 늘지 않는다.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신경 심리학 시간에 청각 정보를 담당하는 뇌의 영역에 문제가 있으면 말하기 능력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배웠다.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진 않아도 생각이 떠오르면 자동적으로 내면의 목소리가 이야기하는 듯 생각이 전개된다(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마저도). 그런데 청각 정보를 담당하는 뇌의 영역에 문제가 있으면 이 내면의 목소리도 고장 난 상태가 되기 때문에 말하기에서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 실제로 청각장애인들의 말하기를 들으면 어눌한데,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문장 단위로 말을 내뱉는 연습을 하며 내가 한 말을 들어보고, 수시로 원어민의 목소리에 노출되어 문장의 운율을 익혀야 실력이 는다.
4. 무조건 꾸준히 해야 한다.
이건 국룰 중에 국룰이다. 뭐든 한번에 100프로 이해하고 암기하려고 하지 말고 베짱이처럼 적당히만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배 긁으며(?) 여유 있게 공부해야 한다. 다만 매일매일 여유롭게. 대부분의 언어학습자가 이 '매일매일'을 못한다. 어떤 언어든 계단식으로 성장하기 때문에 성장하는 지점까지(문법, 단어, 말하기 모든 요소가 일정 수준까지 끌어올려질 때까지) 꾹 참아야 한다. 그런데 무엇이든 빠르게 해내고 싶다는 비현실적 열망 때문에 처음에만 열심히 하다가 하나, 둘 이해 못하는 것이 생기면 바로 손을 놓아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새해가 되면 매번 같은 레벨로 공부하는 것이다. 되든 안되든 무조건 그냥 해야 한다. 공부하기 싫은 날이면 책상 앞에 앉지 말고 밥 먹을 때 넷플릭스 틀고 좋아하는 드라마의 음성을 학습 언어로 , 자막은 모국어로 바꿔서 보면 된다. 그냥 딱 그 정도라도 매일매일 해야 한다. 그냥 오늘 했다는 사실 여부가 중요하다. 곰이 입에도 안 맞는 쑥과 마늘을 100일 동안 먹은 후에야 '사람'이 된 것은 다 이유가 있다. 곰도 먹기 싫은 날은 조금만 먹고 그다음 날 많이 먹었겠지. 그렇지만 그렇게라도 버티고 버텨서 그 보상으로 '말'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 하루 안 하기 시작하면 내일 안 하는 건 더 쉽다. 그러다 외국어와 멀어지며 결국에는 말 못 하는 짐승으로 머물게 되는 것이다.
5. 작은 재미도 찾아서!
앞서 말한 것처럼 원래 언어 공부 자체만 두고 보면 재미가 없다. 게다가 언어 시험을 앞두고 있다고 시험 문제만 풀면 재미가 더 없다. 이해가 되든 말든 재미있어 보이는 유튜브 영상을 보거나 자막을 깔고 넷플릭스에서 드라마를 보면서 언어에 대한 압박감을 줄이고 언어를 언어로써(모국어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경험을 반복해야 한다. 시험이 코앞이라면 시험문제에서라도 재미를 찾아야 한다. 이를테면 나는 토플을 할 때 천문학, 식물학, 무용학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얻을 수 있어서 재미있게 공부했다. 그리고 미드를 볼 때 내가 공부한 표현이 단 한 문장이라도, 단 한 단어라도 나오면 정말 신났다. 더 나아가 써먹고 싶은 표현이 있으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문장만 외워놨다가 써먹었다. 그렇게 재미를 찾으면 부담이 줄고 언어 공부가 공부가 아닌 여가 생활로써도 즐길 수가 있게 된다.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오랜만에 다시 본 영상 덕분이다. 몇 달 전 알고리즘의 승은(?)을 입어 메인 화면에서 보게 된 영상이 오늘 다시 메인 화면에 떴다. 본 거라 그냥 지나치려고 하다가 그 당시에는 독일어가 잘 들리지 않던 상태로 들었던 게 기억났다. 그래서 이번에는 얼마나 들리는지 확인하려고 다시 봤는데 참 신기하게도 잘 들렸다. 독일어뿐만이 아니라 영어도 그랬다.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답답한 마음이 컸는데 어느 순간 귀가 트여서는 들리는 시점이 온다(아 물론 아직까진 이 정도로 빠르게 말하진 못한다). 언어 공부 짬바가 생기면서 이젠 이런 순간을 기다리면서 공부를 한다. 짜릿해! 새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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