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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비와 독일/독일 생활🇩🇪

탐탐이는 고양이 별로 떠났다.

by dobbie und berlin 2024.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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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늦봄과 초여름 사이, 학교 게시판의 글을 통해 귀여운 고양이를 처음 만났다. 동생과 나는 그 고양이를 '탐탐이'라고 불렀다. 동생은 탐탐이를 데리고 돌아가는 길에 탐앤탐스 간판을 보고 탐탐이라고 지었던 걸로 기억하고, 나는 그 당시에 봤던 엠넷 방송  '2NE1 TV' 프로그램 속에 등장한 인형 이름 '탐탐이'에서 따온 걸로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고양이를 데려와 14년 6개월을 키웠다. 

 

탐탐이는 참 키우기 쉬운 고양이었다. 만성 신부전이 오기 전까지 크게 아픈 적이 거의 없었고, 비싼 장난감이 없어도 편의점 영수증 하나면 정말 재밌게 놀았다. 엄청 순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와 동생의 무릎에 앉아 있거나 무릎 위에서 궁디팡팡 받는 걸 좋아했다. 호기심도 많아서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면 쪼르르 달려가서 인사도 했고 둘째 고양이인 두준이가 왔을 때에도 사교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두준이보다 덩치가 컸지만 힘으로 두준이를 위협하지 않았다. 오히려 항상 양보하고 그루밍을 해주고 두준이의 마운팅에 바보같이 당하기만 했다. 정말 가끔 화가 났을 때만 크게 화를 냈다. 그리고 우리가 두준이를 쓰다듬어 주고 있으면 자기도 해달라고 오는 게 아니라 멀리서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아침에 배가 고파도 가만히 내 옆에 앉아서 기다릴 뿐, 얼른 일어나라고 보채지 않았다.

 

3살 때의 탐탐이

 

이렇게 착하고 귀여운 고양이가 어떻게 내 곁에 왔을까. 더 오래오래 보고 싶었는데, 내가 부족했던 탓인지 올해 겨울을 넘기지 못했다. 

 

안락사를 처음 권유받았을 때에는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다른 병원을 찾아가 입원 치료를 더 받았다. 그러나 탐탐이는 회복하기에 너무 늦은 상태였고 다시 안락사 권유를 받게 되었다. 처음에는 슬펐지만, 그래도 나중에는 일주일 동안 헤어질 시간을 가지게 된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는 함께 보낼 수 없지만 귀여운 크리스마스 니트도 하나 사고 나도 산타 모자를 하나 사서 같이 사진을 찍었고 좋은 추억을 하나 더 만들고 보낼 수 있었다.

 

탐탐이가 떠나기 이틀 전에 남긴 귀여운 사진 한 장

 

마지막 일주일 동안 탐탐이는 하루하루 기력을 잃었다. 그때 당시 밥을 거부한 지도 2주가 넘어가고 있었고 강제로 급여하는 양도 많지 않았다. 게다가 신장이 나쁘니 근육도 점점 없어져서 떠나기 전날에는 대변을 스스로 볼 수 없었고 내가 도와주어야 했다. 그리고 그때, 탐탐이를 보내주는 게 맞다는 걸 완전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아마 내가 더 늦췄다면 탐탐이는 결국 화장실에 가지도 못하고 제자리에서 배변을 하는 상황에 이르렀을 것이다. 또 집에서 내가 상주하는 게 아니라서 그 상태로 몇 시간씩 방치되었을 거고, 그건 탐탐이에게 큰 불행을 가져다주었을 터였다. 그래서 지난 금요일에 보내주는 게, 나로서는 최선이었고 후회하지는 않는다.

 

마지막에 같이 찍은 사진을 보고 구독자님이 그려주신 드로잉

 

내가 지금에 와서야 후회하는 것은 따로 있다. 뚜벅이라서 집 주변의 동물병원들만 방문한 것, 그 수의사들의 말만 믿고 이상 신호에도 안일하게 대처했던 것, 올해 여름에 털을 밀어준 것이다. 

 

마지막으로 입원치료를 한 병원을 진작에 알았다면 올해 겨울은 수월하게 넘길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동네 병원에선 몸무게가 700g이 줄어들었는데도 정상범위니 괜찮다고 했고 내가 '탐탐이는 오른쪽 뒷다리에서 채혈이 가능하다'라고 하는데 굳이 굳이 앞다리에서 채혈을 하려다 결국 채혈에 실패해서 혈액검사를 한 주 미루게 되었던 게 탐탐이에게는 결국 치명적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 조금만 검사 결과를 일찍 알았다면 탐탐이가 좀 더 오래, 좀 더 건강하게 지낼 수 있었을 것 같다. 그게 지금까지 머리에 맴돌고 마음을 아프게 한다. 

 

탐탐이는 무서우면 내 옆에 찰싹 붙어 있는다. 병원에서의 마지막 모습

 

매해 여름마다 덥지 말라고 털을 밀어서, 올해도 어김없이 털을 밀어주었다. 그런데 신장이 안 좋으니 털이 빨리 자라지 못했고 결국 겨울이 되어서도, 고양이 별로 떠나는 길에도 다 자라지 못했다. 그냥 밀지 말고 놔둘 걸,  너무 후회가 된다. 어차피 독일 여름은 실내에서 그렇게 덥지도 않은데, 시원한 바닥에 누워서 더 시원하게 지내라고 밀었던 게 후회스럽다. 그래서 병원에서 탐탐이를 안락사 하고, 숨이 멎은 탐탐이의 몸을 데리고 돌아오는 길이 너무 추워서 더 슬펐다.

 

안락사를 하고 그다음 날 오전에 탐탐이를 화장하기 위해 화장터까지 직접 데려다주었다. 화장터는 꽤 멀리 떨어져 있었고, 화장을 해주는 곳에서 픽업을 해주는 서비스도 있었지만, 마지막으로 가는 길은 직접 배웅하고 싶어서 우버를 타고 이동했다. 금요일엔 병원 가는 길에 비도 오고 날씨가 좋지 않아서 슬펐는데, 그래도 화장터로 떠나는 길엔 일기예보와는 달리 해가 떠서 조금 따듯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화장터에 도착해서 탐탐이와 완전히 이별했다. 탐탐이가 생전에 좋아했던 애착 담요만을 끌어안고 집까지 돌아왔다. 탐탐이의 담요에선 탐탐이의 체취가 나는데 탐탐이는 없었다. 탐탐이가 떠났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너무 슬펐고 돌아오는 길에는 눈물이 시도 때도 없이 흘렀던 것 같다.

 

탐탐이와 함께한 14년 동안 정말 많이 행복했다. 다시 만나자는 의미로 붉은 실을 묶어준다고 해서 나도 탐탐이에게 묶어주었는데, 꼭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 다시 만날 때까지 고양이별에서 평안하게 지내길. 

 

 

따듯하게 가라고 붉은 실로 목도리도 만들어주었다. Auf Wiederse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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